초보 식집사의 식물존

식물 테라피: 식물을 잘 키우고 싶어서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봤습니다

무기력했던 식물 킬러, 식물의 안부를 궁금해하다

저는 꽤 오랫동안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시간을 보냈습니다. 가랑비에 옷 젖듯 쌓여온 상처들이 신경계를 무너뜨렸고, 길고 어두운 우울과 불안의 터널 속에서 매일 천장만 바라보며 하루를 흘려보내곤 했죠. 내 발밑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던 그 시절, 제 좁은 방 한구석에는 이마트에서 충동적으로 사 왔던 작은 테이블야자 하나가 있었습니다.

제가 물 한 모금 제대로 주지 못하고 방치하는 동안에도, 그 작은 식물은 어떻게든 제 곁에서 푸르게 살아남아 주었습니다. 어느 날 문득 그 대견하고 씩씩한 잎사귀를 마주한 순간, 처음으로 제 안에 어떤 의문이 싹텄습니다. ‘나는 왜 번번이 식물을 죽였을까? 이 작고 조용한 생명체는 어떤 환경을 원하고 있었을까?’ 그것은 제가 아주 오랜만에 타인이나 외부가 아닌, 내 곁에 있는 무언가의 안부를 진심으로 궁금해한 순간이었습니다.

식물을 살피는 일은 곧 내 마음의 결핍을 마주하는 일

식물을 잘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자, 저는 이 생명체들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. 잎끝이 노랗게 타들어 가는지, 흙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, 새순이 돋아날 빛은 충분한지를 매일 살폈습니다.

그런데 그 과정은 놀랍도록 제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과 닮아 있었습니다. 물을 너무 많이 주어 뿌리가 썩어가는 식물을 보며, 타인의 기대와 억압 속에서 숨 막혀 하던 제 과거를 떠올렸습니다. 반대로 바짝 말라 시들어가는 잎을 볼 때는,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메말라가도록 방치했던 제 무기력한 시간들이 겹쳐 보였습니다.

식물이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적당한 물과 밝은 햇빛, 그리고 무엇보다 잎 사이를 스쳐 지나갈 시원한 바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우며 깨달았습니다. 저 역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묵은 감정을 환기할 바람과 다정한 위로가 필요했다는 것을요. 식물을 잘 키우기 위한 공부는 필연적으로 제 마음의 결핍을 마주하고 이해하는 과정으로 이어졌습니다.

식물 테라피, 화분 안의 우주를 돌보며 나를 돌보다

식물의 속도에 맞춰 물을 주고 기다리는 연습을 하면서, 저는 제 자신에게도 다정해지는 법을 배웠습니다. 예전 같으면 작은 신체화 증상이나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‘나는 왜 이 모양일까’ 자책하며 땅굴을 팠겠지만, 이제는 조금 다릅니다. 화분의 흙이 젖었는지 살피듯 제 감정의 상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, ‘괜찮다, 이 또한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’라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.

제가 식물들에게 쏟았던 다정한 관찰과 기록의 시간들은 결국 저를 향한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었습니다. 식물에게 물을 주려면 어쨌든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했고, 식물에 햇빛을 쐬어주기 위해 창문을 열며 저 역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. 화분 속 아주 작은 우주를 정성껏 돌보는 행위가, 텅 비어있던 제 삶을 다시 생기 있게 채워주는 강력한 자기 돌봄의 스위치가 되어준 셈입니다.

30개의 화분과 함께 완성된 단단하고 평온한 세계

수많은 시행착오 끝에, 어느덧 제 좁은 방은 30여 개의 화분들이 뿜어내는 푸른 생명력으로 가득 찼습니다. 그리고 연쇄 식물 킬러였던 저는, 이제 임금체불을 겪는 백수가 되어도 “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”라며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평온한 사람이 되었습니다.

가끔 생각합니다. 제가 식물을 키운 것이 아니라, 식물들이 저를 키워낸 것이 아닐까 하고요. 식물을 잘 키우고 싶어서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본 시간들, 그 작고 끈질긴 일상의 노력들이 차곡차곡 모여 조금 더 단단해진 제가 만들어졌습니다. 만약 당신도 마음이 메말라가는 것 같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, 작은 화분 하나를 곁에 두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. 그 초록색 잎사귀가 당신이 잊고 있던 자기 돌봄의 다정한 시작을 알려줄지도 모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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